선택된 유전자만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미래의 도시. 모든 사람들은 유전자를 선택해서 태어나게 되고, 그렇지 못하고 태어난 이들은 열등한 유전자라며 사회 속 차별을 받는다. 그 안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한 남자가 있다. 너무나도 옛날 영화이지만 지금 보아도 느끼는 여운은 나 자신 스스로의 가치에 한계를 매기고 있던 모습을 부끄럽게 했다.
옛날 영화를 다시 끄집어내 보다
내가 9살 때였던가. 우연히 TV에서 하는 영화를 보았다. 그때는 너무나 어려서 어떤 내용인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를 봤던 거 같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인가 TV에서 이 영화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영화는 그때 당시 눈높이로 비추어 봤을 때, 굉장히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미래에서 상상하는, 선택된 자들의 이야기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미래의 도시. 더 이상 장애인이나 열등한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유전자 과학이 발전하게 된다. 덕분에 모든 부부는 아기를 임신하게 되는 순간부터 아이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뱃속 아기의 키, 몸무게, 각종 지적 능력, 피부, 머리색, 눈동자 색까지... 더 이상 임신은 자연적인 일이 아닌, 선택이고 완벽한 계획일 뿐이다. 그러한 시대 가운데서 부모의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임신되어 태어난 아기는 우수한 유전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차별받는다. 남자 주인공 빈센트 역시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였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노력과 그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로부터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러한 빈센트를 보고 그의 부모는 그의 동생 안톤만큼은 시험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다. 빈센트는 그런 그의 동생과 비교를 당하며 더욱 철저히 사회의 차별을 느끼며 자라 간다.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에서 일하게 되는 빈센트. 그의 꿈은 오직 가타카의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타카의 청소부일 뿐이다. 오직 열등한 유전자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빈센트. 그는 열성 유전자를 가진 이들에게 가짜 유전자 증명서를 조작해주는 이른바 "DNA 중계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우성인자를 제공해 줄 유진 머로우란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후, 빈센트는 유진 머로우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기로 한다. 자신의 신체적 허점을 숨기기 위해 콘택트렌즈를 끼는 것은 물론, 유진과 같은 키로 맞추기 위해 뼈를 이어 붙이는 수술까지 하게 된다. 그런 빈센트를 보고 진심을 느낀 유진. 그렇게 유진도 빈센트가 유진으로 바뀔 수 있도록 소변과 혈액 샘플을 만들어주며 빈센트를 도와준다. 엄청난 노력 끝에 새로운 사람"제롬"으로 거듭난 빈센트. 제롬이 된 빈센트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가타카에서 유능한 우주비행사로 인정받는다. 게다가 같은 직장동료인 아름다운 여인 아이린과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노력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형사가 된 자신의 동생 안톤이 가타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빈센트를 의심하게 된 것. 안톤은 계속해서 제롬을 의심하고 추적하지만, 여러 위기 속에서 제롬은 유진과 의기투합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결국 꿈에 그리던 우주선에 탑승하게 되는 제롬. 이제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결국 해냈다는 것을.
나는 나 자신에게 새장을 씌우고 있지 않은가
영화 속 한 장면이 유독 머릿속에 남았다. 휠체어를 탄 유진이 자신을 추궁하다 돌아서는 형사를 따라가며 외친다. "너 몇 번이야! 당장 네 번호를 말해!" (아마도 유전자상 하위 계급의 형사만 할 수 있는 위치였나 보다.) 개인의 성격이나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오로지 유전자의 확률만으로 개인의 능력치를 정해버리는 사회. 유전자만 아닐 뿐이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 오로지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직장을 다니고, 어디에 살고, 어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고 그 사람을 우러러볼지 아니면 깔볼지를 정하는 우리의 잣대와 말이다. 그런 우리의 기준은 이제 온라인 속 세상에서도 다를 것이 없다. 인스타그램 속 사진과 좋아요의 개수만큼 그 사람을 평가하고 그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과연 그것이 나의 전부의 모습일까? 우리는 다시 한번쯤 생각해야 한다.
아무도 나의 가치에 대해 값을 매길 수 없다
설령 나 스스로도 말이다. 나의 한계는 경험해 보고 나서야 알 수 있다. 또 그 경험 또한 정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구든 상황은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정해져 있다고 믿는 나의 생각뿐이다. 빈센트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절대로 그 방법을 찾기까지 쉽지 않았음도 보여줬다.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위기가 있음도 보여줬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우주선을 타는 성공한 마지막 장면이 아니다. 바로 그가 계속 좌절하고 다시 방법을 찾는 영화의 중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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