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고 소식을 들은 왕실. 그런 왕실의 모습을 대표하는 여왕 엘리자베스. 영화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사고를 당한 날로부터 일주일간의 영국 왕실의 행적을 담아내고 있다. 그 안에서 왕세자비의 사고소식에 대처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가 짊어지고 가야 했을 여왕으로써의 역할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다이애나비를 대하는 영국 왕실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을 담다
TV 화면 속 영국의 새로운 총리의 모습과 함께 국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앉아있는 엘리자베스 왕비. 다른 국민들처럼 투표를 해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속에서 잠시나마 평범한 일상을 부러워하는 그녀의 속마음이 엿보인다. 다음 날 아침, 새로운 총리의 이력을 보고받는 왕비. 기존의 격식을 거부한 채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총리라는 평가를 전달받으며 왕비는 약간 당황스러워한다. 드디어 왕실에 입성한 블레어 총리 부부. 왕비를 만나기 전 갖춰야 하는 격식에 대해 안내받는 총리 부부의 표정에서 긴장이 맴돈다. 고지식한 여왕의 궁중 예식에 첫 만남이지만 총리 부부는 살짝 기가 질린 듯하다. 왕비를 접견한 후 나오며 총리 부부는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지금은 총리의 당선보다 다이애나의 사건이 더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혼한 다이애나비의 행적을 일일이 뒤쫓는 파파라치들. 그들을 피해 운전하던 다이애나의 차는 그만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른 새벽 파리 대사관으로부터 다이애나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왕비와 왕세자. 그들의 기도와는 다르게 다이애나는 결국 숨을 거두고, 이로 인해 영국 왕실은 혼란스러워진다. 복잡한 마음의 왕비와 왕세자. 차마 아들에게 손을 뻗지 못하는 엘리자베스와 눈물이 고인 채 의연하게 대처하는 찰스. 그들은 왕족이기 전에 시어머니와 남편으로써 한 때 가족이었던 다이애나에게 어떤 심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이튿날 아침, 다이애나의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슬픔에 잠기고 왕비는 다이애나를 애도하는 총리의 전화에 침착하게 대답한다. 더 이상 다이애나는 왕족이 아니라고.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왕실은 분주하면서도 침착하게 준비하기 시작한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마주하고 고인을 왕족의 예법으로 대해야 할지 아니면 민간인으로 대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한 그들. 여전히 사랑스러웠던 국민의 왕비로 대하는 세상과 달리, 왕실은 그녀를 더 이상 왕실의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뜻을 비춘다. 월요일, 다이애나를 애도하는 국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왕실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예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논 중이고, 그런 모습에 총리는 다시금 영국 왕실의 고지식함에 답답함을 느낀다. 자신의 며느리였던 다이애나의 소식이 담긴 신문을 보며 담담하게 자신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여왕. 여전히 연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장례식에 대한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비서의 질문에 무심하게 대답하는 여왕의 모습에서 이제 며느리의 죽음은 고인에 대한 슬픔이 아닌, 그저 하나의 절차처럼 느껴진다. 다이애나에 대한 애도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찰스와 그에 반해 왕실의 규칙과 품위만을 걱정하는 엘리자베스 왕비. 생전 다이애나의 인터뷰를 보며 엘리자베스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다이애나가 그렇게 된 것에 어느 정도 자신들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엘리자베스에게서 조금이나마 다이애나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듯하다. 화요일, 뉴스에서는 다이애나의 죽음을 대하는 왕실의 무심한 태도에 분노한 국민들의 인터뷰가 연이어 보도된다. 하지만 마치 딴 세상에 있는 듯 별장의 숲 속에서 차를 마시는 엘리자베스와 왕족들. 대화중에 그들은 오히려 왕실은 이미 다이애나에게 예우를 보일만큼 보였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의 대화에서 다이애나의 일은 슬픈 일이 아닌, 마치 빨리 해치워버려야 하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한편 총리의 아내는 총리에게 이런 낡아빠진 규율에 얽매여 사는 왕실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아내의 말을 듣는 총리는 애써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춘다. 수요일, 뉴스에서는 연이어 왕실에 대한 비판이 실린 기사가 나오고, 총리는 자신에게 왕실의 보수적인 모습을 개혁하자는 사람들의 의견에, 되려 왕실의 안위를 걱정한다. 왕비에게 전화를 거는 총리. 총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엘리자베스는 끝까지 자신의 판단으로 대처할 것이라 대답한다. 그런 총리에게 암묵적으로 경고하는 왕실의 측근들. 잠시 후, 혼자서 채비를 하고 손자들이 있는 곳으로 운전해 가는 여왕. 그만 차가 냇물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고, 자신을 도와줄 왕실 비서들이 올 동안 왕비는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갑자기 여왕으로써의 긴장이 풀린 탓일까. 많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듯이 흐느끼는 왕비. 그녀의 앞에 갑자기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이 나타난다. 한참 동안 사슴과 눈을 마주치는 여왕. 그때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고 왕비는 사슴에게 소리친다. 빨리 도망가라고. 멀리 가는 사슴의 뒷모습을 보며 웃는 여왕의 미소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목요일, 국민들은 점점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영국 왕실의 태도에 환멸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여왕에게 전화를 건 총리. 총리는 국민들의 반응을 비추어 말하며 여왕에게 다이애나에 대한 조의를 표할 것을 설득한다. 영국 왕실의 존위와 인간으로서의 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왕. 고민하는 여왕에게 여왕의 어머니는 국민의 반응보다 왕실의 품격만을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여왕이 조의를 표하는 것에 대해 찰스 왕세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TV 화면 속 왕비가 다이애나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을 본 총리는 마음을 돌린 왕비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기쁨을 내비친다. 금요일, 연설할 준비를 마친 왕비에게 남편이 말한다. 저번에 왕비가 본 사슴을 사냥했다고. 그 말은 들은 다이애나의 표정에서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별장으로 찾아가 죽은 사슴을 확인하는 엘리자베스. 사슴의 머리를 쓰다듬고 여왕의 모습으로써 사냥꾼에게 경의를 표하고 돌아서는 그녀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이애나를 향한 추모연설을 하러 가는 엘리자베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뉴스를 보며 사람들은 그녀의 태도를 비판하는 가운데 총리만큼은 화를 내며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그저 왕실을 위해 자신의 소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침착하게 군중들 앞에서 추도사를 연설하는 엘리자베스 여왕. 추도사를 읽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속마음은 시어머니로써의 연민이었을까. 여왕으로써의 소임이었을까. 2개월 후, 총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러 간다. 그런 총리에 반해 차가운 표정의 여왕. 여왕은 사과하는 총리에게 차갑게 대답한다. 그 일로 인해 왕실의 존엄성이 떨어졌다고. 언젠가 사라질 자신의 위치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여왕에게 총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여왕은 말한다. 자신은 그저 배운 대로 여왕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슬픈 일이 있어도 감정을 보이지 않고 위엄 있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옳은 줄 알았다고. 총리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산책을 하는 엘리자베스의 뒷모습에서 그녀가 짊어지고 있어야 할 삶의 무게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역할에 스스로를 가둬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때로 맡겨진 역할에 자신의 본질을 가둬야 할 때가 있다. 어떠한 직책을 맡았을 때, 혹은 부모로서의 위치, 아내 또는 남편의 위치. 나의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고 차마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들. 아마 영국 왕실에서 살고 있다면 태어나서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그런 상황들에만 둘러싸여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계속 고뇌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보일 것인지. 오로지 남들의 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살아가는 엘리자베스 여와의 삶과는 다르게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극히 대비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다. 어쩌면 감독은 왕실의 규율과 국민들의 시선에만 자신을 헌신하며 맞추고 살아가야 했던 엘리자베스에 대한 연민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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